글의 끝맺음 하기 - 글쓰기 테크닉 10



글의 끝맺음

오랜만에 글쓰기에 관한

연재 포스팅을 다시 해봅니다.

 

글쓰기 테크닉을 읽고

글을 써봤다면 이제

2000자 정도의 글을 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입니다.

 

글쓰기가 시작하기 쉬워졌다는 것은

내용에 살을 붙여서 본론까지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마무리가

또 어려워집니다.

 

이는 당연한 것 입니다.

원래 무슨 일이든지 판을 벌리는건

쉬운데 정리하는 일은 힘듭니다.

 

야외에서 삼겹살 파티를 한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에

힘들지가 않습니다.

 

정육점에 가서 양손에 무겁게

고기를 사오고 상추쌈도 준비합니다.

쪼그려 앉아서 숯에 불을 지피고

테이블을 세팅합니다.

 

한참을 떠들석하게 먹고

마시다가 이제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는 판을 벌리느라

체력도 떨어져 있고

많이 지친 상태입니다.

 

테이블 위가 음식물과 섞여서

잡다하게 더러워지고 숯불은

재가 되었으며 부르스타에는

돼지 기름이 굳어있습니다.

 

이것들을 다 정리해야

비로소 삼겹살 파티가

끝나는 것이지요.

 

마무리는 원래 어렵습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글의 끝맺음

즉 하나의 글을 마무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글의 구성(이야기의 순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처럼

대부분의 글은

 

서론 -> 본론 -> 결론

 

의 형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꼭 글만 이렇지는 않죠.

 

이야기의 형식을 가진 다른

매체들도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연극, 드라마는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기가 서론이고 승전이 본론이면

결은 결론입니다.

 

이야기 뿐만이 아닙니다.

기획서나 사업설명회 등 어떤

목적을 가진 글도 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획서의 개요와 목적이 서론

세부 실행단계와 절차가 본론

최종 기대효과(매출)가 결론

 

과 같습니다.

 

이런 글들은 이야기의 형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단 극화는 가상의 이야기죠.

 

모든 극화는 인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구성됩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시간순으로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실계에서 시간은 한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역순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는 영화 테넷이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에서 소개된 바가 있습니다.

 

뭐 시간상 거꾸로 이야기를 해도

어느정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긴 합니다만 역시 보편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시작과 끝을

시간순으로 배치해야 알기가 쉽습니다.

 

그렇다면 글의 마무리에 있어서

이야기의 순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글의 마무리를 잘하는 것 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내용으로 시작해서

끝맺음이 개판이 되는 스토리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대체로

마지막을 중요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이런 용두사미의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컷 기대에 들뜨게 해놓고

그 결말이 무엇이냐?

라는 독자들, 시청자들의 반발은

생각보다 강렬합니다.

 

그래서 빡친 팬들이 원작을

보완하고자 평행세계의 이야기를

직접 작성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저작권이란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팬들이 스토리를 소비함으로써 

작가를 배부르게 해줬으니

팬들에게도 흐지부지한 결말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법입니다.

 

사실 작가는 평행우주를 만들어 주는

팬들에게 감사라도 해야합니다.

 

스토리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작가지만 팬들이 자처하여

스토리를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낳은 부모, 기른 부모의

차이점이라고나 할까요?

 

성공하는 스토리는 그렇게

생명력을 얻습니다.

 

요즘 대세인 웹툰이 웹소설에서는

댓글이 많이 달립니다.

작가가 이 댓글을 반영하여

결말부가 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대중적인 글의 마무리는

시대적인 요구를 잘 반영해야

좋은 마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주관이 없다는게

아닙니다.

 

주관도 중요한데 글은 많은

이들에게 읽히지 않으면

사라지거나 구석에 1000년 정도

처박힐 운명이 됩니다.

 

이 세상과 동떨어진 결론을

주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약간 방관자 스타일이랄까요.

방관자도 하나의 작가주의가

될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방관자의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시대의 요구에 대해서

작가의 주관을 적절하게

넣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 하는 법

어떤 글을 쓰는가에 따라

글의 마무리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여기서는 일단 모든 글의

기본이 되는 수필의 마무리에

(에세이 - 이 블로그 포스팅 처럼)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수필은 자유로운 글이라

열린 결론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초보자들에겐 이게 더 좋을 겁니다.

 

꼭 어떤 결론을 내지 않아도

글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글쓰기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수필이라도 시작점과

끝점이 있어야 글을 전개하기가

편합니다.

 

수필에서의 좋은 결론은

뫼비우스의 띠 처럼 순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뫼비우스의 띠
뫼비우스의 띠

 

무슨 이야기인즉...

 

뫼비우스의 띠는

시작과 끝이 맞닿아있습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이

무한정으로 순환됩니다.

 

좋은 글은 한번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읽고 싶어집니다.

이야기의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더 나아가서는 창작의 욕구까지

불러 일으키죠.

 

그러니까 시작 자체가 끝맺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글쓰기에서 좋은 끝맺음을

만드는 것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항상 마지막을 염두해 두는 것입니다.

 

- 이 글이 과연 순환하고 있는 것인가?

- 이 글은 정렬된 방향이 있는가?

- 시작과 끝은 맞닿아 있는가?

 

이 질문을 계속하면서 서론과

본론을 작성하면 자연스럽게

결론을 만나게 됩니다.

 

*******

 

글은 서론 - 본론 - 결론 으로

분류합니다, 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이죠.

각각 따로 떼어져 있는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을

분리해서 봤을 뿐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으로 배웠을텐데

약간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조립하는 것은

인간의 사고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자꾸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으로

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제대로

글이 써질리가 없습니다.

 

설령 글을 어떻게 시작했더라도

결론짓기가 힘들 글이 됩니다.

 

그래서 좋은 방법중 하나는

시작에서 결론을 염두해 두고

쓰는 것 입니다.

 

결론부터 글을 쓰는 방법도 있는데

역순으로 가려면 번거로와져서

초보자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결론을 정해놓은 단점

결론을 정해놓으면 글을

마무리하기가 쉽지만

좀 단점이 있기 때문에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뻔한 결론의 글은 독자들의

뻔한 반응을 일으키고

이런 글은 끝까지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영화같은 것도 처음에

한 10분정도 보면 이미 결말이

머리속에 그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로버트 맥키의 스토리 작법서에는

영화의 관객들은 당신이 창조한

세계에 완전히 몰입할 준비가

되었고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 뻔한 결론의 글은

음... 재미가 없습니다.

 

뻔한 결론은 쓰지 않는게 좋긴 한데,

직업상 뻔한 결론을 내야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경우는 화법에 개성을 준다거나

좀 양념맛으로 극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화법중에는

좀 고리타분한 방법이 있습니다.

왜 고리타분 하냐면 신선하지가

않아서 지겹기 때문입니다.

 

-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돼)

- 라떼는

(과거의 무용담, 성공담

- 현재는 적용이 안됨)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쨋든

독자의 시간을 소비하는 일인데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그리고 독자는 생각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좀더

머리를 쥐어짜내야 합니다.

 

끝맺음 구체적 예시(연습하기)

여기서는 간단한 예시로

끝맺음을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예시에 적용할 첫번째 방법은

시작과 동시에 끝을 염두해

두는 것입니다.

 

정보성 글에 가까울 수록

결론이 명확한 경우가 많습니다.

 

좀 결론내기 쉬운 글부터 보겠습니다.

 


글의 제목: '반려견 목줄 착용의 중요성'
부재 : 당신의 반려견에 반드시 목줄을 해야 하는 이유

결론: 목줄을 착용해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이는 최악의 불상사를 피하는 일이다.

 

자 여기서 보면 서론과 본론 없이

결론부터 제시했습니다.

 

결론이 곧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하죠.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주제로 글을 썼을 겁니다.

 

이러한 글을 써야하는 것은

동물보호단체 일수도 있고

애견협회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반려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썼을 수도 있죠.

 

이런 정보성 글은 결론이

뻔해도 충분히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론과 본론의 내용이

생각보다 괜찮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본론에는 아마

목줄을 착용하지 않아서

일어난 사고사례를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려견은 종류가 다양합니다.

말티즈, 포메라니안 처럼 체구가

작은 개가 있고 진돗개, 리트리버

같이 어느정도 덩치가 있는 개도

있습니다.

 

작아도 공격성향이 있는 견종이

있고 커도 순둥한 개가 있습니다.

리트리버 같은 경우 사냥개지만

천사견이라 불릴정도로

사람을 매우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또 외모가 귀여운 포메라니안의 경우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입질이나

강한 공격성을 띄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귀여운 강아지라서

목줄을 하지 않고 산책을

나갔다가 다른 개들과의

싸움에 휘말리거나

노인이나 아이들을

물어서 큰 상처를 낼 수도 있습니다.

 

또 대형견의 경우

목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길거리의 행인들에게 위협감을

줄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던 내용이라면

좋은 글이 될 수 있겠죠.

 

즉 저위의 글은 이미 결론이

나와있고 나머지는 내용만 채우면

완성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글은 끝맺음의 고민이 필요없고

내용의 충실성이 더 중요합니다.

 

*******

 

그렇다면 두번째는 글의 마무리가

열린 결론인 수필 쪽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글의 제목: 남산에서 바라본 2021년 서울의 풍경

도입부: 오늘 10년만에 남산에 올라갔다.

이야기:

- 10년 만에 타본 케이블카에 대한 감상
- 코로나 방역 시대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
- 백범 김구 선생님과 안중근 의사의 동상에서의 감회
- 남산 타워앞에서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
- 남산에서 옛 연인과의 추억

 

남산의 글에서 결론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보고 듣고 느낀 것입니다.

 

결론이야 뭐 사람마다 느낀점이

다를 겁니다.

 

지금은 인기가 좀 줄었는데

이래뵈도 남산은 수많은 커플과

가족들이 나들이 명소로

소싯적에 연인들과 남산 한번

가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겁니다.

(솔로들이 많은 시대라 생각보다 많을지도...)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추억의 장소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뭐 10년전 20년전 30년전

연인들이 지금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제는 살만큼 살고 다 늙어서

그보다 좋은 추억도 많을테니까요.

 

하지만 남산의 상징성은

서민들의 공간이라는 부분입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시대를

지나 선진국이 되면서

이제는 사람들간에

좀 빈부의 격차가 커졌죠.

 

경제적으로 '빈 자'와 '부 자'에겐

플렉스가 의미가 다릅니다.

 

하지만 예전의 못살던

한국인들에겐 빈 자나 부 자나

모두 아련한 추억의 공간으로

여전히 남산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라떼는 이란 감성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아련한 추억이란 것은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기에

지금보다 못살고 못배웠던 시기가

더 좋았다라는 이상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남산에 그런 추억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누구나 그리워하는

자신만의 아련한 추억이 담긴

장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뭐 꼭 남산이 아니라

스타시티면 어떻겠습니까?

 

시설도 더 깔끔하고 쾌적한 곳인데요. 

 

다만 시대적으로 보면 스타시티의

추억보다 남산의 추억을 공감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기 때문에

남산을 소재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결론은 어떻게 낼까요?

 

마음대로 결론을 내면 됩니다.

 

단 수필을 인터넷이나 커뮤니티 등에

공개할 때는 어느정도 사회적

공감대나 정서를 헤치지 않는 편에서

결론을 내는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 남산은 라떼가 더 좋았다.

- 요즘것들은 예의가 없다

- 반려견을 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논쟁의 소지가 되는 글은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논쟁이 되죠.

 

뻔히 논쟁이 되려고 올리는 글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비판적인

논설을 하려면 그에 걸맞는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써야 합니다.

 

아련한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경험과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글은 공감을 받기 어렵습니다.

 

수필의 장점이 가벼운 글에도

공감이 잘된다는 특징이 있는데

욕을 먹으려고 수필을 쓰는 거라면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게 더 낫습니다.

 

글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것 입니다.

하다못해 자신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 경우의 결론은 읽는 독자의

반응을 정해놓고 쓰는 것이

올바른 마무리입니다.

글의 제목: 남산에서 바라본 2021년 서울의 풍경

도입부: 오늘 10년만에 남산에 올라갔다.

이야기:

- 10년 만에 타본 케이블카에 대한 감상
- 코로나 방역 시대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
- 백범 김구 선생님과 안중근 의사의 동상에서의 감회
- 남산 타워앞에서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
- 남산에서 옛 연인과의 추억

결말: (열린 결말)


독자가 읽었을 때의 반응:
- 남산에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공감
- 세대가 다르더라도 공감하여 댓글로
소통했으면 좋겠다.
(20대~60대도 비슷한 공감가능)
- 정치나 민감한 주제의 논쟁은 피하고 싶다
(예를 들어 남산의 부장들 영화 처럼)

수필이라고 결말을 마음대로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글에는 파워가 있어서

남산에 관한 글 하나의 논쟁으로도

전국구 뉴스에 출연할 수 있습니다.

 

위의 수필의 경우는 독자의 반응이

진정한 글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조금 써보면 알게되는데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그 타겟이 되는 그룹에서

어떤 반응을 할지 대략 감이옵니다.

 

그래서 훌륭한 글의 마무리는,

-> 여기서 훌륭한 글이란

잘 읽혀지는 글을 말함

이미 머리속에 독자의 반응을

체크하면서 쓰는 결론입니다.

 

물론 살다보면 내면에 몰입하여

글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글은

작가의 내면에서 나오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그래서 글의 마무리라고 하더라도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종류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것 입니다.

 

윌스토 저서 이야기의 탄생은

스토리 텔링에 관한 책입니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이야기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가 어떻게

끝이 날지 알고 있다.

수백억년이 지난 지구에는

엔트로피 한계가 올 것이고

모든 생명체는 죽고 우주는

영원히 잠을 자게 될 것 이다.

 

약간 각색한 글이지만

여전히 멋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빅뱅에서 시작된 우주는

엔트로피의 최대치에서

열역학적인 죽음에

다다르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이 현재까지 알아낸

물리학적 지식으로는 언젠가

인류도 멸망하고 우주에도

종말이 올 것을 예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굴복하지 않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자손을 낳고

사회를 발전시켜 번성하는

인간의 모습도 의미가

없는 것인데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입니다.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

영원한 번영의 이야기

영원한 안식의 이야기

 

같은 것들은 인간에게

희망을 선사해주는데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내가 왜 글을 쓰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글을 쓰는게 좋고

앞으로 많은 글을 쓰고 싶다면

웬만하면 희망적인 글을

써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말도 안되는 행복회로를

돌리는 글만 쓰라는 말은 아닙니다.

 

대체적으로 인간은 살아가면서

행복한 시간보다 불행한 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일단 사람의 일생에는

젊은 시절보다 늙은 시절이 더 길죠?

 

청춘은 짧고 노년은 깁니다.

유전자 기술이 더 발전하지

않는 이상 빈자도 부자도 모두

예외가 없습니다.

 

또 즐거운 시간보다는

힘든 시간이 깁니다.

 

직장인은 일주일의 40시간을

직장에서 보냅니다.

40시간이라 얼마 안되는 것 같지만

회사에 가장 액기스 시간인

9시~6시를 가져다 바치는 겁니다.

 

원래 해가 떠서 질때까지가

머리도 잘 돌아가고 활력이

제일 좋은 시간입니다.

 

프라임타임 40시간은

짜투리시간보다 가치가 높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은

대부분 일생이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통해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 입니다.

 

무한정 행복회로는 좋지 않지만

어두운 현실에 희망적인

이야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글을 쓰다보면

글의 마무리니 서론 본론 결론이니

그런 것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상업적 글쓰기를 할 때는

이런 양식이 효율성을 위해

필요한 것 뿐입니다.

 

이런 블로그 포스팅이나 수필은

고작해야 단가가 낮은

구글 애드센스를 조금 받을 뿐이니

그 정도의 노력은 필요치 않습니다.

 

사실 그런 글이라서 블로그를

보는 재미도 있죠.

 

구글 검색에는 비상업적인 블로그에

더 많은 정보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결론

이 글 조차도 결론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글의 끝맺음 하는

방법에 대해 대충 아이디어를

잡았다면 딱히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저같은 경우는 90% 이상

포스팅에서 결론을 내는 편입니다.

 

일단 시작을 했으니 마무리를

지어준다는 느낌이죠.

 

그리고 항상 마무리가

깔끔하지도 않습니다.

 

인터넷의 시대에는

모든 글의 마무리가 완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구글 검색해서

글을 한개만 읽는게 아니라

같은 주제의 글 2-3개를

함께 읽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빠진 내용이 저기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한사람의

지성에 의존하는게

인터넷이 아닙니다.

 

그러니 블로그나 수필에서

글의 마무리에 대한 부담감은

딱히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시작하면서

마무리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자세입니다.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진다면 좋은 글을

많이 남길 수 있을 것 입니다.

 

마무리가 두려워서

글을 잘 못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요소들을 하나하나씩

뚫어 나가는게 글쓰기테크닉을

연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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