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Children 쿠루미(Kurumi) 가사 해석



미스터 칠드런은 1989년 결성된 일본의 록 밴드로 일본의 국민 밴드 중에 하나입니다. 이들이 일본의 국민 밴드가 된지는 이미 오래됬고 일본의 국민 밴드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 이상의 레전드 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보통 미스터 칠드런을 줄여서 미스치루라고 부릅니다.

 

데뷔가 92년으로 22년인 현재 30주년을 맞이하고 아직도 활동 중이니까 어마어마한 밴드입니다. 미스치루는 밴드지만 보컬인 사쿠라이 카즈토시가 전곡을 작곡, 작사하여 멤버 중에서는 가장 큰 존재감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일본 국민 밴드였던 Zard의 사카이 이즈미와도 비교해 볼 수 있는데요. 이 밴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 이라는 점에서 사쿠라이 카즈토시는 미스치루를 대표합니다.

 

일본의 국민 밴드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음원을 공개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미스치루의 노래에도 다양하게 나오는데요. 이번 포스팅은 일본의 장기 불황 시대를 공감했던 쿠루미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한번 해석해보려고 합니다.

 

필자는 2008년도에 일본에 있었을 때 미스치루의 노래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일본은 장기 불황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당시 미스치루의 감성은 약간은 우울하고 센치한 연주에 보컬 카즈토시의 호소력이 짙은 음색에 가사는 또 알 수 없는 내일을 기약하는 약간의 희망(약간이기 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느꼈다) 그런 점들이 좋았습니다. 90년대 버블경제를 겪은 일본은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미래를 무조건적으로 낙관하던 젊은이 들은 나이가 들었고, 많은 이들이 제대로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시대라 전통적 가족이 붕괴되고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한국도 90년대 말 IMF를 겪으면서 경제난을 맞았지만 구조조정을 통해서 잘 극복했습니다만, 이 일본의 장기 불황은 IMF와는 차원이 다른 버블붕괴였습니다. 원래 일본의 황금기는 7-80년대로 당시의 일본은 모든 것에 낙관적이었습니다. (한국은 이제 농촌에서 새마을 운동할 때다) 뭐 노래하나 해석하는데 일본의 현대사를 길게 설명하는 건 좀 별로지만 그래도 배경을 이해한다면 미스치루가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밴드인지, 그 일본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될 겁니다.

 

 

쿠루미(Kurumi - くるみ)

쿠루미는 미스치루가 2003년 발매한 25번째 싱글입니다. 쿠루미라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독백으로 이야기하는 노래로 바로 가사부터 보겠습니다.

 

쿠루미(くるみ)는 일본어로 호두라는 뜻이 있는데 그냥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됩니다.

 

가사 번역

*그대로 번역하면 의미 전달이 애매해서 일부 의역합니다

 

ねぇ くるみ

야 쿠루미

 

この街の景色は 君の目にどう映るの?

이 거리의 모습이 네눈에는 어떻게 보이니?

 

今の僕はどう見えるの?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보이니?

 

ねぇ くるみ

야 쿠루미

 

誰かの優しさも皮肉に聞こえてしまうんだ ねぇ

누군가의 다정함도 빈정거리는 것 처럼 들려버려 응

 

そんな時はどうしたらいい?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지?


良かった事だけ思い出して

좋았던 일만 생각나고


やけに年老いた気持ちになる

너무 늙어 버린 기분이 들어


とはいえ暮らしの中で 今 動き出そうとしている

그렇지만 생활속에서 지금 움직이려고 하고 있어


歯車のひとつにならなくてはなぁ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되


希望の数だけ失望は増える

희망의 숫자만큼 실망은 늘어가


それでも明日に胸は震える

그래도 내일에 가슴이 떨려


「どんな事が起こるんだろう?」

어떤 일이 일어날까?


想像してみるんだよ

상상해 보는 거야

 

ねぇ くるみ

야 쿠루미


時間が何もかも洗い連れ去ってくれれば

시간이 뭐든지 씻겨서 깨끗하게 한다면


生きる事は実に容易い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야


ねぇ くるみ

야 쿠루미


あれからは一度も涙は流してないよ

그때부터는 한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아


でも 本気で笑う事も少ない

하지만 진심으로 웃는 일도 많지 않아


どこかで掛け違えてきて

어딘가에서 거는 것을 잘못해서


気が付けば一つ余ったボタン

정신을 차리니까 하나 남은 단추


同じようにして誰かが 持て余したボタンホールに

똑같이 해서 누군가의 남은 단추의 구멍에


出会う事で意味が出来たならいい

만남으로써 의미가 생기면 좋겠어


出会いの数だけ別れは増える

만남의 숫자만큼 이별도 늘어나


それでも希望に胸は震える

그래도 희망에 가슴이 떨려


十字路に出くわすたび 迷いもするだろうけど

사거리에 마주칠 때 마다 헤메이기도 하겠지만

 

今以上をいつも欲しがるくせに

지금 이상을 항상 원하는 주제에


変わらない愛を求め歌う

변하지 않는 사랑을 구하며 노래해


そうして歯車は回る

그렇게 톱니바퀴는 돌아가


この必要以上の負担に

이 필요 이상의 부담에


ギシギシ鈍い音をたてながら

삐걱삐걱 둔탁한 소리를 내며


希望の数だけ失望は増える

희망의 숫자만큼 실망은 늘어


それでも明日に胸は震える

그래도 내일에 가슴이 떨여


「どんな事が起こるんだろう?」

어떤 일이 일어날건가?


想像してみよう

상상해봐


出会いの数だけ別れは増える

만남의 숫자만큼 이별도 늘어

 

それでも希望に胸は震える

그래도 희망에 가슴이 떨려

 

引き返しちゃいけないよね

되돌아가면 안되겠지

 

進もう 君のいない道の上へ

나아가자 니가 없는 길 위로

 

가사 해석 & 뮤직비디오 해석

쿠루미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지만 '쿠루 미라이' (来る未来)의 줄임말이라는 의미로 가사를 바라보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쿠루미의 공식 뮤직비디오를 보면 좀 더 쉽게 알 수 있는데요.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Mr.Children 「くるみ」 MUSIC VIDEO - YouTube

 

가사 첫부분에 보면 쿠루미에게 묻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보이니? 라는 건 80년대 미래를 낙관했던 청년들이 쿠루미 - 즉 자신들이 기대했던 낙관적인 미래에게 질문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쿠루미라는 건 과거에 기대했던 미래이고 그 미래는 지금의 현실입니다. 가사가 꽤 철학적이어서 이해하기 쉽지는 않은데요.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해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해석해보겠습니다. (*뇌피셜 해석임을 참고)

 

뮤비가 시작되면 미스치루는 안나오고 2000년대에 정리해고(리스토라)된 듯한 아저씨가 나옵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그 나이가 리스토라 대상이었습니다(지금도 비슷한가?)

 

 

돈도 없는데 갑자기 쇼윈도에 진열된 기타를 보고 눈빛이 밝아집니다

 

 

집에서 혼자 밥먹으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의 꿈 현실 같은 것들이겠지요.

 

 

다정한 아내와 예쁜 딸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환영이었고 혼자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고 있을 뿐 입니다. 이런 이미지가 괜히 나온게 아니라 당시 리스토라 당했던 사람들 중에는 이혼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본에는 남편이 퇴직한 후의 황혼이혼이라는 말도 있지만 결혼생활의 조건은 남편이 돈을 벌고 있을 때 유지가 되고 그게 안된다? 그럼 바로 돌아서는 일도 있는거죠.

 

 

아저씨는 기타를 들고 스시을 하는 친구를 찾아가서 노래를 합니다. 뜬금없지만 모양으로 봐서는 고등학교나 대학때 같은 밴드를 했던 것 같습니다.

 

 

잃어버렸던 감동을 되찾으며 손을 맞잡습니다. 본격 아재밴드인 Mr.Adult 밴드 결성을 하자고 의기투합하는겁니다.

 

 

다음은 노가다 친구를 부릅니다. 이게 2003년도 공개 뮤비니까 휴대폰은 있지만 공중 전화기도 사용하던 시절입니다.

 

 

네번째 멤버는 애기를 보며 슈퍼(잡화점)를 운영하는 아재. 친구와 전화를 하자 와이프가 뺏어갑니다. 다른 이들과 달리 가정이 있어서 밴드에 참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기타를 만지작 거리며 상상에 즐거워하지만 아기를 업은 자신의 현실이 무겁습니다.

 

 

결국 자다말고 밤중에 기타를 들고 뛰쳐나가는 슈퍼 주인

 

 

기다리던 친구들은 환호합니다.

 

 

스시집에서 Mr.Adult 밴드 결성

 

 

경로당에 공연을 나갑니다.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노인들. 왜냐하면 경로당 정도 되면 록밴드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엔카(우리의 트로트 같은)같은 노래가 인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나타나죠.

 

 

경로당, 임산부 태교 프로그램 등 전혀 밴드와 맞지 않는 곳에가서 되도않지만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Mr.Adults - Mr.Children과 대비가 됩니다. 그래서 쿠루미는 미스치루 이름의 해석에도 중요한 곡입니다.

 

 

되도 않는 아재들이지만 음악을 하는 동안에는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슈퍼 아재는 베이스 인듯

 

 

공사장 아저씨는 드러머입니다.

 

 

스시집 사장의 기타 실력

 

 

쿠루미 뮤비의 하일라이트입니다. 결혼식장에서 공연을 하는데  아재들이 현실에 맞춰 살면서 잊어왔던 열정을 충분히 되찾은 모습입니다. (가사처럼 톱니바퀴의 하나였던 사람들이 다시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 같다)

 

미스터칠드런 쿠루미

 

상상속에서는 사람들이 환호하지만...

 

 

현실은 냉담하다. 이것이 바로 당시 리스토라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들은 일본의 버블경제 시대에 졸업하여 취직하고 10-20년을 무한한 낙관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가오가 남아있었는데 현실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냥 시대의 패배자일 뿐이다. 즉 그들에게 아무 기대가 없는 상태였다. 현실과 기대치의 괴리감이 극심한 세대였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고통은 더 클 수 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결혼식은 끝났지만 그들은 계속 노래합니다. 이것은 자기들을 위한 노래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처음 부터 누군가에게 들여주기 위한 밴드 공연이라기 보다는 자기들을 위해 부른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술한 공연장과 싸늘한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기쁨에 차서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누가 듣건 말건 신경쓰지 않는다니... 상업적 논리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어쨋든 그들은 만족했습니다. 세상엔 저런 사람도 있는거니까요.

 

 

공연을 끝내고 석양을 맞으며 걸어가는 네 사람.

 

 

그들의 얼굴은 기쁜 표정이고 서로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나타냅니다.

 

 

처음의 그 우울한 중년이 아니라 착한 이웃 아저씨로 변했습니다. Mr.Adult 종이를 던져버립니다.

 

미스터칠드런 쿠루미

 

사쿠라이 카즈토시가 그 종이를 줍고 펼쳐봅니다.

 

사쿠리아 카즈토시

 

거기엔 Mr.Children에 엑스표가 Mr.Adult에 동그라미가 있습니다. 사쿠라이는 종이를 접어서 Mr.Children 을 바라봅니다.

 

 

Mr.Adult 밴드를 멀리 바라보면서 뒤돌아 갑니다.

 

사쿠리아 카즈토시

 

이것이 1989년 미스치루의 결성 하루 전이라며 뮤비는 끝납니다. 마치 이 아재들의 겪은 일들이 미스치루가 만들어지기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느껴집니다.

 

 

 

뮤비에 대해 전체적으로 일본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리스토라 당하고 아내와 딸마저 떠나간 아재, 옷차림을 보면 알겠지만 전형적인 일본의 화이트칼라입니다. 뭐 요새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쉽게 짤리는 시대라서 별 차이 없기는 합니다만 저 시대 이전에 워낙 일본의 경제가 좋았고 화려했기 때문에 괴리감이 컸던 거지요. 원래 부와 가난은 상대적인게 더 중요합니다. 보릿고개를 넘었다던 어른들이 옛날 옛적 이야기할 때 보면 밥 새끼만 줘도 무슨일이든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밥 새끼만 주고 무슨일이든 하면 어떻게 됩니까? 현대판 노예라고 합니다. 모두가 밥을 먹기 힘든 시대에는 그게 가능하지만 모두가 밥을 그럭저럭 먹을 수 있는 시대에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부에 있어서 상대적인 개념을 무시하면 큰일납니다. 라떼는 화법을 모두가 싫어하는 이유는 다른게 아닙니다. 기준이 다른데 과거 기준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중년이 40-50대에 리스토라 당한다는 것은 사실상 인생이 나락으로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뮤비에서 그걸 표현한거지요. 록밴드를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옛날을 생각하며 공연을 해도 받아주는 곳은 의미가 없는 곳 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를 위해서 노래를 하는 겁니다. 이게 의미가 있는게 지금은 40-50대면 100세 시대 기준으로는 아직 할게 많은 나이지만 당시에는 그냥 위기의 중년이었습니다. 당신이 2000년대 초반에 무얼 하던 지금 하던 것에서 벗어나면(회사에서 짤리면) 새로운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쉬는거죠. 사회에서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시 밴드를 만들어서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그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뭐 뮤비의 맥락은 그렇습니다. 이것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는 부분도 있고요. 가사가 시적이라서 어떤 100%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중심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 노래 15년이 넘게 듣고 있는데 아직까지 질리지가 않습니다. 지금 중년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거고 그리고 지금 젊은이들이 나중에 중년이 되었을 때 공감할 수도 있는 노래입니다. 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총체적 해석

어렵게 접근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정리해보면...

 

쿠루미는 미래의 나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는 미래의 나라기 보다는 과거에 생각했던 미래의 나, 즉 지금 이 시점의 나를 과거에 기대한 모습입니다. 그 둘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있어서 기대가 충족이 안되면 괴롭죠. 대부분은 괴롭습니다. 그걸 노래한 겁니다.

 

내가 생각했던 쿠루미가 아니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순진한 시절처럼 무한정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떨리는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의지는 공감이 됩니다.

 

이상, 미스치루의 수많은 명곡이 있지만 그 중에 일본에서 가장 많이 들었고 좋아하는 곡 쿠루미의 뇌피셜 해석이었습니다

 

 

I'm Home! 방명록을 씁니다 태그 클라우드를 봅니다 작성자 카테고리 삭제 관리 포스팅하기 수정하기 웹사이트-미사용 이메일 facebook youtube instagram github twitter wordpress